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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민남’, ‘트민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트렌드 에 민감한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줄임말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유행 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가 되 었다. 유행을 좇는 순간 우리는 자신 의 색을 잃고 남이 설계해 둔 팔레트 안에서만 움직인다. 그리고 이 사실 은 현재 한국 사회의 소비 방식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감각 구조는 특히 물건에서 먼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라부부’ 는 원래 일부 컬렉터들만 알던 장난 감이었지만, 유명 뮤지션과 셀럽이 SNS에 소장 인증을 올리자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중고 시 가는 원가보다 높아졌고, 사람들은 그 높은 가격을 가치의 증명으로 해 석했다. 결국 다수의 선택은 정말 좋 아서라기보다 이미 인정받은 취향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조정된 감각은 물건에서 끝나지 않는다. 라이프스타일도 동일한 메커 니즘 위에서 굴러간다. 특정 카페의 톤앤매너, 사진 필터, 포토부스 프레 임이 한 시즌을 장악하면 사람들은 그 연출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카 페 선택 기준도 커피의 맛보다 사진 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가 중심이 된 다. 트렌드는 구매를 넘어 일상의 미 적 기준까지 설계하는 구조가 된 것 이다.
사실 ‘트렌드’라는 말은 본래 경제 학 개념이었다. 특정 지표가 장기적 으로 향하는 방향을 뜻하며, 한국은 행 경제용어사전도 이를 일시적 변동 과 구분되는 구조적 흐름으로 정의한 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에서 트렌 드는 더 이상 장기 방향의 개념이 아 니다. 플랫폼과 기업은 이용자의 시 청 시간, 스크롤 속도, 저장 여부, 구 매 이력을 정교하게 계량화하고, 어 떤 이미지와 감각을 더 많이 노출해 야 장기 소비가 늘어나는지 계산한 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세련됨이라 는 감각은 대중의 자발적 취향이 아 니라, 기업의 수익 전략에 맞춰 설계 된 결과에 가깝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 구조를 거 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반복 노출된 이미지가 감각의 기준선을 만 들고, 그 기준을 따라가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느끼게 만든다. 특히 대학 생들 사이에서는 이 기준이 더욱 강 하게 작동한다. 2024년에 발표된 서 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 따르면 20대의 소비 결정에서 ‘시각적 SNS 공유 가능성’이 브랜드의 가치보다 더 높은 선택 기준으로 작동한다고 발표했다. 또, 2023년 한국소비자원 의 조사에서도 20대 52.4%는 “직접 써보고 판단한다”보다 “SNS를 통해 이미 검증됐다”는 이유로 구매를 결 정한다고 응답했다. 소비는 취향의 표현이 아니라, 현재의 흐름 안에 있 다는 신호로 기능한다.
행동경제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 키는 사람이 모호한 선택보다 검증 된 선택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불 확실성을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 래서 우리는 ‘이게 예뻐서 구매한다’ 기보다 ‘많은 이가 이미 예쁘다고 인 정한 것’을 선택한다. 이때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개성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지 스스로 설정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도 회 복이 쉽지 않은 기회비용이다. 그리 고 한번 평균에 맞추기 시작한 소비 는, 이후 판단 기준의 기준선 자체를 바꾸어버린다.
우리는 종종 “내가 좋아하는 것”이 라고 믿으며 소비한다. 그러나 플랫 폼은 취향을 관찰한 뒤 수집하는 수 준을 넘어, 무엇을 좋아하게 만들지 를 설계해 평균값 취향을 기준처럼 제시한다. 그러면 선택은 취향의 표 현이 아니라, 설계된 감각의 경사에 따라 움직이는 모사로 바뀐다.
특히 SNS에서 많이 보이는 ‘검증 된 취향’은 빠르게 전파되며 다수의 선택을 하나의 기준으로 전환한다. 소비자는 그 기준을 객관적이라고 느 끼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걸러낸 평 균값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 요한 태도는 유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따르는 이유를 한 번은 묻는 일이다. 핵심은 많은 정보 를 그대로 소비하는 것보다, 그 정보 가 어떤 기준을 거쳐 자기 안에 자리 잡았는지 점검하는 과정이다.
진짜 취향은 주어진 선택지 중에 서 하나를 고르는 데서 완성되지 않 는다. 그 선택의 ‘기준’을 스스로 설 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취향은 자기 것이 된다. 결국 취향의 주도권은 선 택지가 아니라 기준을 세우는 사람에 게 남는다.
수많은 이미지와 권유 속에서도 자 신의 기준을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사 람만이, 결국 흔들리지 않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글 박수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