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글로컬 산학일체 혁신대학
디스토피아는 이상향을 의미하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어둡고 부정적인 미래를 다룬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20세기에 극에 달했고, 디스토피아를 다룬 수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이 글에서는 디스토피아 장르의 대표작 두 가지와 현재를 비교해 보려고 한다. 우리의 사회는 얼마나 그들의 예상과 닮아 있을까.
1984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전설적인 마지막 문장을 통해 널리 알려진 ‘1984’는 디스토피아라는 장르를 다루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1984’의 세계는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다. 집마다 감시 기능이 있는 텔레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역사는 당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주인공은 그런 사회에 반감을 가지고 저항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끈질긴 세뇌와 고문의 과정을 거쳐서 빅 브라더에게 투항하게 된다.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의 대립과 그로 인한 시대적 혼란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에 작품이 그리는 미래는 어둡고 절망적이다. 작품에서 그리는 사회상은 우리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작품의 예견이 빗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중의 세계와 현대 사회에서 닮은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들은 새로운 불안 요소를 만들어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테러 방지 등을 이유로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5년간의 SNS 사용 기록을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했는데, 이는 ‘1984’의 감시 사회를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2월 23일부터 휴대전화 개통을 위해서는 얼굴 인증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데이터가 서버에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은 없다고 밝혔지만, 인권 침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화씨 451
“유색인들은‘꼬마 검둥이 삼보’를 싫어하지. 태워 버려. 백인들은‘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싫어하고. 그것도 태워 버려.”
작품의 주요 반동 인물인 비티는 책이 금지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한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은 책이 금지된 미래를 그린다. ‘1984’가 전체주의와 독재를 비판했다면 브레드버리의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상상했다.
‘화씨 451’의 세계는 시민들에 의해 책이 퇴출당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대중들에 의해서 책이 검열되고 줄어드는 과정을 지나 결국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을 위험하고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엔 방화수(fireman)들이 책을 불태우고 시민들은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말초적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결말에서는 더 나은 세계로 재건될 것이라는 희망을 비추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은 현대의 모습과 놀랍게 닮았다. 로봇 개, 무선 이어폰처럼 단순한 것부터 가상 현실이나 SNS에 대응되는 개념들이 등장해 놀라움을 준다. 등장인물들에서는 숏폼이나 SNS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요새 들어 논란이 되는 문해력 관련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금일, 중식, 우천 시 등 일상적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일어나는 사건들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문제다. 이는 단순한 독서 부족이나 교육의 문제를 넘어 반지성주의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앞날을 가늠할 때면 어두운 면을 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몇 가지 부정적 사건들이 벌어졌다고 해서 우리가 디스토피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그들의 작품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암울한 세상을 그린 문학 작품들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현재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글 원지형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