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대학신문방송국

HIGHHANBAT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글로컬 산학일체 혁신대학

문화

[518호] 광복절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되다

작성자한밭대신문사  조회수516 등록일2021-09-01

20194, 문재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했다. 정부는 애초 봉오동 전투 승전 100주년인 작년에 유해 봉환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1년이 연기되었다. 이어 지난 16일부터 17일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유해 봉환을 성사시켰다.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꾸려진 특사단은 지난 14일 홍범도 장군의 기존 묘소가 있는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되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광복 76주년인 15일 오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주에서 출발해 저녁 840분쯤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공군 특별 수송기를 통해 서울 공항에 도착하였다. 순국한 지 78년 만에 고국의 땅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조국 품으로 돌아옴에 따라 숭고한 애국정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한다라며 국민 추모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15,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대전현충원 현충관에 임시 안치되었으며 16일과 17, 이틀간 대전현충원 현충문 앞에 국민분향소가 설치·운영되었다. 추모식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오프라인 추모 방식을 직접 참배 또는 승차 참배(드라이브 스루)로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온라인 추모는 국가보훈처 누리집에서 이루어졌으며 헌화를 하고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게 하였다. 20일 기준 국가보훈처 누리집 추모의 글은 7,106개가 개시되었다.

이틀간 현충관에 임시 안치되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18, 영정을 모신 남양 홍씨 문중 대표를 선두로 국방부 의장대에 의해 독립유공자 3묘역으로 이동되었다. 같은 날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 특사단, 국방부 장관, 여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남양 홍씨 문중 대표, 대한고려인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는 국민대표 자격으로 특사 임무를 수행한 조진웅 배우가 보았다.

유해 하관 후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홍범도 장군 훈장 추서식에서 카자흐스탄의 토카예프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주 현지 홍범도 장군 묘역의 흙을 대한민국의 흙과 함께 허토하며 안장식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보훈처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주 정부와 홍범도 장군의 현지 묘역 보존·관리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협약 내용은 크즐오르다 주에 있는 홍범도 기념단지의 안전한 관리 상호 협의하에 홍범도 기념비 설립 및 거리 조성 협력 관리를 위한 재정적 지원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협약식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졌다.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머슴 노릇과 포수 노릇을 하였던 홍범도 장군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계기로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스스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뛰어난 사격술과 유격 전술로 일본군을 소탕하자 날으는 장군 홍범도’, ‘백두산 호랑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1907년 함경·평안도 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일본군에 대항하였으며 1920년대 독립전쟁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이후 일제와의 전쟁을 우려한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1937년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터전을 옮겼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주에서 고려극장의 경비 책임자 직무를 맡으며 노년을 보냈다. 또한, 동포사회의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 동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광복을 2년 앞둔 1943, 생을 마감한 뒤 카자흐스탄에 묻혔다.

광복절은 1945, 35년 만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축하하는 날이다. 조국의 광복을 원한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다방면으로 싸워오신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존재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국외에는 안중근, 윤동주, 송몽규의 유해를 비롯해 많은 독립운동가의 유해들이 남아있다. 더불어 독립운동의 업적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도 있다.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의 업적을 기리고 유해를 모두 모셔와 후세대까지 꾸준히 기억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최근 주변 국가에서 우리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여 주장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에도 큰 관심을 두어 올바른 역사가 기억되길 바란다.

글 이유정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