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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05호] 브로드웨이와 차별화된 우리나라만의 ‘멀티캐스팅’

작성자한밭대신문사  조회수413 등록일2020-03-16


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웃는 남자의 그윈플렌 역할에 이석훈, 규현, 박강현, 수호 총 4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그런데 한 배역에 여러 명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문화라고 한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한 역할을 온전히 한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원캐스팅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역할에 두 명 이상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멀티캐스팅이 만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멀티캐스팅에는 한 역할에 두 명이 캐스팅되는 더블(Double)캐스팅부터 많게는 4, 5명이 캐스팅되는 쿼드러플(Quadruple), 퀀더플(Quintuple)캐스팅까지 모두를 멀티(Multi)캐스팅이라 일컫는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이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는 원캐스팅을 당연시한다. 배우들은 주 8회 공연을 철저하게 본인이 소화해낸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배역에 임한다. 원캐스팅에 대한 부담은 스타 배우에게도 예외는 없다. 뮤지컬의 주력 배우로 홍보되는 경우에는 공연의 질에 따라서 브로드웨이 내뿐만 아니라 배우의 평판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많은 중압감을 가진다. 배우들의 컨디션 난조 등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대에 설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대역배우인 언더스터디를 준비해 놓지만, 한 배역에 여러 배우를 캐스팅하는 멀티캐스팅은 통용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멀티캐스팅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초창기 뮤지컬 문화가 자리 잡을 때에는 원캐스팅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04년 오디컴퍼니가 지킬 앤 하이드공연에서 더블캐스팅을 시도했다. 주인공인 지킬박사의 역을 조승우 배우와 류정한 배우가 함께 배역을 맡고 흥행에 성공하자 멀티캐스팅은 우후죽순 뮤지컬 산업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배우들은 뮤지컬의 배역을 맡게 되면 막대한 연습량과 고정적인 스케줄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스케줄과 병행하기 힘들다. 특히 연예인 활동을 병행하는 배우들은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멀티캐스팅을 하게 된다면 주 8회를 도맡아 해야 하는 원캐스팅에 비해 주2-3회로 줄어들다 보니 배우 입장에서도 부담감이 덜어진다. 또한, 멀티캐스팅은 마케팅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이다. 한 명의 배우를 내세워 홍보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의 배우를 앞세우는 것이 홍보 효과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뮤지컬 산업에 아이돌과 인기 배우들도 뛰어드는 만큼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기존 팬들의 유입과 티켓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고효율의 마케팅, 배우들의 팬덤의 흡수 효과, 배우들의 스케줄 문제 등,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위와 같은 독특한 뮤지컬 문화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로 인해서 일명 회전문 관객이라는 뮤지컬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회전문 관객이란 한 작품을 수차례 관람을 하는 소비자이다. 뮤지컬 업체 측은 이런 회전문 관객을 타깃으로 하여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내놓을 정도로 뮤지컬 업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이 뮤지컬을 재관람하는 이유로는 멀티캐스팅의 이유가 크다. 이들의 은어 중 전캐찍기는 모든 캐스팅의 조합을 본다는 뜻으로, 배우들 마다 배역의 해석이 달라지고 캐스팅의 조합마다 뮤지컬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멀티캐스팅으로 인한 순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부분에 있어서 멀티캐스팅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뮤지컬은 서로의 호흡과 앙상블이 중요하다. 보통 한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는 배우들끼리 6주에서 8주 정도의 연습과 리허설을 반복한다. 이 시기에는 작품 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호흡을 맞추며 작품을 완성하는 기간이지만 멀티캐스팅을 하게 되면 배우들의 물리적인 연습량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작품의 완성도를 낮추고 관람객들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캐스팅에 따라서 작품 완성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작품에 대한 정보량에 따라 완성도가 다른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멀티캐스팅은 다양한 매력과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그만큼 일정하지 못한 복불복식의 작품의 완성도는 소비자들의 뮤지컬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일 수 있다.

 

글 윤정빈 기자

그림 김지우 기자